혜화동 1번지 동인페스티벌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을 올린다고 했을 때 스크루지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내용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낚인 관객이 꽤 있을 것 같네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하는 크리스마스캐럴에 살인얘기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튼 전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연극이 좋은 것 같습니다. 런닝타임이 짧고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긴하지만 왠지 실험적인 느낌을 주는 게 혜화동1번지란 극장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구요.
일상적인 연말, 대학동창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져옵니다. 근데 좀 이상합니다.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숨깁니다. 장례식장에 가지 않습니다. 대책회의를 합니다. 잘 아는 사이는 맞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사이일까요?
알고보니 살해당한 여자는 대학동창인 세 남자의 공동 잠자리 파트너였습니다. 또 그런 목적으로 살해당하던 날에 모두가 함께 만났었구요. 그럼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받기에 딱 좋은 상황인데다 이런 사실이 집에 알려지면 곤욕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래도 수많은 잠자리를 같이 했던 여자가 죽었는데 슬픔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살인자에게 분노하는게 아니라 그x는 왜 그날 죽어서 곤란하게 만드냐며 이미 죽은 사람에게 분노하기까지 합니다. 현대의 인간관계라는 게 고작 이런걸까요? 자기욕심만 채우는?
현대의 인간관계가 삭막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마음으로한 살인'이 아니었을까요? 단지 성적인 욕구로 사랑도 없이 한 여자를 탐닉했던 세 남자. 서로가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에도 서로 묵인하며 계속 탐닉했던 세 남자.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목적으로 그 여자를 만나러온 세 남자. 여자는 대학때보다 좀 똑똑해진 듯 했습니다. 마치 대학 때 당한 것을 복수라도 하듯 잘근잘근 남자들을 압박했죠. 그때 모두가 이미 살의를 강하게 느끼고 마음으로 살인했던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랐던 것이죠.
막상 실제로 죽고 나니까 남자들은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혹시 내가 죽인건 아닐까? 하며 자신을 의심해보기도 하구요. 경찰조사에서도 왠지 쫄리구요. 성경에 "마음으로도 살인하지 말라" 는 말이 있죠. 그게 떠오르더군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쉬웠던 점을 그냥 몇가지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전반적으로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얼굴에 자꾸 그림자가 생기더군요.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그리고 혜화동1번지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의자가 너무 불편해요. 공연시간이 짧은데도 힘들더군요. 결말이 너무 확 끝나버린것도 아쉬웠습니다. 원작 소설(이 연극은 김영하의 동명소설이 원작입니다.)에서도 그랬을 것 같지만, 좀 어안이 벙벙하달까요. 음악과 조명이 끝나는 분위기를 내서 그렇지 내용으로만 봐선 전혀 끝난걸 눈치채기 힘들었습니다. 또 형사들의 연기는 맥을 탁 끊어놓더군요.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무리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좀 과하게 끊어져서 안타까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매너에 대해서 얘길 하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본 "사랑을 주세요" 때도 느꼈던 건데요. 무대에 아는 사람이 나왔다고 객석에서 심하게 반응 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 공연 때는 진지한 장면에서 계속 소리내서 웃어서 얼마나 신경쓰였는지 모릅니다. "사랑을 주세요" 때는 계속 지들끼리 떠들고요. 도대체 다른 관객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역지사지로 생각 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는 배우가 몇명있어서 그 심정을 이해는 합니다. 아는 사람 나오면 그냥 막 웃길때가 있죠. 그 웃긴걸 옆사람이랑 공유도 하고 싶죠. 전 그럴때 참다참다 안되면 입막고 몸 수그리고 웃습니다. 제발 매너 좀 지켰으면 좋겠네요.
공연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써놓긴 했는데, 귀차니즘때문에 이제야 올리네요. 웹상에 공개된 공연사진이 없어서 좀 아쉽군요.
길을 지나다 "사랑을 주세요" 포스터를 봤을 때 얼마나 흥분됐는지 모릅니다. 이 연극은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만큼 작품성도
상당하지만, 제겐 개인적으로 추억이 담겨 있는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 출연한 작품이 바로 "사랑을
주세요" 였습니다. '처음'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기억이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며 동아리를 떠나려는 시점이라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주세요"가 바로 제가 연극을 사랑하게된 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닐
사이먼이란 작가는 지문을 상당히 자세히 쓰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 구조나 인물들의 캐릭터가 제가 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옛 추억의 감상에 빠지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배우들이 대사 하나하나 할때마다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하나의 대사를,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연습을 반복했었지... 아! 저땐 저렇게 표현했으면 더
좋았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봤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5년전 이야기네요. 직접하는 공연이 심하게 땡기는 밤입니다.
"사랑을 주세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가정에서 일어난 이야깁니다. 나치 치하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할머니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죠.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야만 하구요. 그래서 자식들을 굉장히 강하게 키웁니다.
사랑이나 따뜻함 따윈 사치지요. 부족한 사랑의 결과로 할머니의 자식들은 하나씩 장애를 가진채 성장하게 됩니다. 정신지체인 벨라,
숨넘어가면서 얘기하는 거트, 나약한 울보 에디, 너무 강해 건달이 돼버린 루이..
할머니와 벨라만이 사는 숨막히는 집안에 에디의
아들들인 제이와 아리가 들어와 살게되면서 그 깊숙하고 오래된 상처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할머니도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없겠습니까? 사랑의 방법이 자식들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강하게 키우는 것이었던 거죠. 제이와 아리가 살게된 이후 벌어진 몇가지 에피소드로 인해 할머니는
조그만 변화를 겪게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거죠. 내 아이들이 사랑을 그토록 갈구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된 것이죠. 순간의 깨달음으로 모든 것이 확 변하진 않겠지만 점차 좋아질 것이란 느낌을 남긴 채 극은 막을 내립니다.
다소 올드스타일의 극입니다. 제가 LP세대는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극이 아닐까합니다. 남녀간의 러브스토리도 아니고, 자극적인 코미디도 아닙니다.(아, 노출은 있군요) 정극스타일이고, 무대도 굉장히 사실적이죠. 완전 아날로그스타일입니다. 극의 길이도, 대사의 길이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참 따뜻한 극입니다. 포근한 미소가 지어지는 극입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요소가 많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작가가 워낙 친절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장대사에 다 녹아있구요. 극의 인물들이 벌이는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워낙 양념을 잘 해주고 있거든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는 드문 작품이죠. 신나게 웃다가 울 수 있는 작품이고, 웃기만 하다 잊혀지는 작품이 아닌 뭔가
남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빛이 났습니다. 특별히 벨라역의 정경순씨와 루이역의 장두이씨의 연기가 발군이었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물론 굉장히 잘 소화해냈지만요.
어쨌든 이 극은 사람들이 사랑을 얼마나 갈구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 하나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죠. 하지만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사랑은 소용이
없습니다. 옆 사람에게 그 사랑을 보여줘야지요. 사랑은 표현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표현된 사랑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겁니다.
웹서핑을 하던 중에 아주 기특한 녀석을 발견했어요. '보드플러스' 란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인데요. 책상 위에 올려 놓는 작은 책상이에요. 이 녀석을 만난 뒤로 200% 공간 활용을 하게 되어 너무 기쁘답니다.
요샌 대부분의 일들을 컴퓨터와 함께 하잖아요. 그래서 책상 가운데 떡하니 모니터와 키보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요. 모니터는 많이 날씬해져서 큰 자리를 차지 하지 않는다고 해도 키보드는 은근히 자리를 차지하죠. 그래서 책이나 메모지 등을 놓을 자리가 되게 애매해지고 정리도 잘 안되는데요. 보드 플러스만 있으면 만사해결입니다!!
일단 받자마자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올려봤어요. 정리가 아주 깔끔하게 됩니다. 키보드 바로 위에 있다보니까 손과도 가까워서 좋구요. 보드플러스의 높이는 충분합니다. 키보드를 아예 보드플러스 안에 쏙 집어넣어도 타이핑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요.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요런거였습니다. 책이랑 컴퓨터랑 보면서 공부해야할 일들이 종종 생기는데 워낙 불편했거든요. 전공서적은 두껍고 크기때문에 대충 어떻게 처리하기도 어려웠죠.(사진에 있는건 전공서적은 아닙니다. 걍 가까운데 있던 두꺼운 책을 올려놔봤어요.)
쓰다보니 이런 활용도도 있더라구요. 컴퓨터랑 놀 때, 이 위에 간식거리를 올려놓으면 아주 편합니다.(모니터 화면은 아이리스라죠.)
우연히 발견한 활용법인데요. 독서대로 활용도 가능합니다. 앞면이 살짝 아치형태로 되어있어서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생김새를 보자면 그냥 깔끔합니다. 특출나게 디자인이 좋진 않지만 무난하게 어울리죠. 사실 디자인과 기능이 더 뛰어난 제품이 같은 회사에서 나왔는데요. 가격대가 좀 쎄요.. 강화유리로 되어있어서 안전해보입니다. 너무 무거운걸 올려놓으면 안될 것 같지만요. 일반적인 활용에선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사실 책상 활용도 때문에 무선키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확실히 선이 없기때문에 유리하긴 합니다. 컴퓨터를 안쓰고 책상을 넓게 쓰고 싶을땐 키보드를 저멀리 치워버리기 편하거든요. 근데 문제는 컴퓨터와 책상을 동시에 쓰고 싶을때였죠. 이 문제가 해결되서 만족스럽습니다.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제 블로그에 답글 남겨주셔서 보고 찾아왔는데 상당히 잘 꾸며져 있는 블로그가 부럽네요.ㅠ.ㅠ 책상 위의 책상은 좋은 것 같은데.... 제 책상 정리가 안되서.. 잘 보고 갑니다. 휴대폰은...같은 종류군요...제껀 요즘 통화 키가 안눌려서 죽겠던데...ㅜ.ㅜ 아르고....
아무튼 새복 많이 받으시고 한 해 마무리 잘하세요~
제목을 보면 어떤 내용일거라고 생각되시나요? 전 유머감각에 대한 내용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재치있게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거나,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목차를 훑어보니 일반적인 화술에 대한 내용이더군요. 뭐 그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진 않아서 읽어내려갔습니다. 글씨도 큼지막하고 내용이 별로 깊이가 있진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사실 하루만에 책 한권을 다 읽은 건 참 오랜만입니다.)
내용이 참 뒤죽박죽입니다. 제목에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장의 소제목과 내용도 매치가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간혹 한 장이 끝나면 간단하게 포인트를 정리하는 친절함도 보였지만, 이 역시도 매치가 안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화술에 대한 것 외에 처세술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짜증나는 상사에 대응하는 요령이라던지, 술자리를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이라던가 하는 것까지 아주 광범위하더군요. 광범위하고 깊지도 않은 내용들인데 그나마도 서로 중복되는 내용이 많더라구요. 차라리 처세술 전문 블로그의 포스팅을 묶어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이 책이 꽤 잘 팔린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이 거의 초판이었던 모양인데, 검색해보니 제 표지와 다른 표지가 2종류나 검색되더군요. 최근에 발행된 완전개정판은 30만독자를 감동시켰다고 광고를 하고 있는데다 교보문고 추천도서에, 문광부 선정 우수도서더군요. 좀 황당하더군요. 목차를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1999년판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어보였지만 다른책이 아닌 개정판이니 기본틀은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건.. 사람들이 제목에 낚였거나 글쓴이나 출판사의 정치력이 대단하다고 밖엔 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책이 완전 쓰레기인건 아닙니다. 전체가 하나의 주제로 관통되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 형태로 짤막짤막하게 엮어져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긴합니다. 에세이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그래도 좋은이야기를 하고 있기때문에 읽어볼만은 합니다. 화장실이나 병원, 미용실 등의 대기석에 비치해둘만한 책입니다. 딱 그정도 역할을 하면 충분한 책입니다.
이런게 바로 명저인가 봅니다. 일전에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는 읽고 나서 다소 실망을 했는데요. "설득의 심리학"은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 이게 나온지 오래된 책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인간과 사회의 심리는 지역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상당히 재밌습니다. 한편으론 무섭구요. 어떤 사람들은 책 속에 인용된 수많은 심리실험 결과를 믿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주로 미국에서 70~80년대에 행해진 실험들이거든요.(더 이전 것도 많았던 것 같구요.) 하지만 대부분의 황당한 실험결과들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도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방영됐던 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에서 많은 실험을 실제로 해보인 바 있습니다.
연기가 방으로 들어오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미동도 하지 않자 피실험자 역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는 다거나(사회적 증거의 법칙),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다짜고짜 붙잡고 팔굽혀펴기를 하라는 등 이상한 지시를 해도 그냥 따른다거나(권위의 법칙), 의사가 진료실에서 코끼리코와 같은 진료와 전혀 상관 없는 것을 지시해도 의심하지 않는(권위의 법칙) 실험은 꽤나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온지 오래된 책이며, 인용하고 있는 실험 결과들도 널리 알려진 것들이 많은 지라 그다지 새롭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실험들의 대부분은 치알디니가 직접 수행한 것도 아니니까 이 책의 강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책의 강점은 그러한 실험 결과와 자신의 경험을 6가지 법칙으로 엮어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하나 꼽자면, '권위를 키를 커보이게 한다' 는 부분이었습니다. 동일한 사람을 두고 학생이라고 소개했을 때에 비해 교수라고 소개했을 때의 예상키가 5cm나 컸다는 군요. 루저를 벗어나려면 권위있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실험 결과였습니다;;
6가지 법칙 하나하나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합니다. 이 책을 구매해놓고 왜 그동안 책장에 처박아두고 있었는지 후회가 될 정돕니다. 이젠 "설득의 심리학2"가 발간되었던데 어서 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듭니다. 혹시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에겐 강추합니다!
그냥 제 짧은 생각으로는 꿈은 다들 다양하게 꾸는데, 그걸 실현하기 너무 어려운 사회라서요. 고등학생 쯤만 되도 꿈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고 대학 졸업반 정도 되면 그냥 '먹고사는것' 이 최대의 꿈이 돼버리는 현실이라.. 그게 문제가 아닐까해요.. 이 세상이 이미 계급을 나눠놓고 있으니 말이죠.
2006년 수많은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베스트셀러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를 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답게 저희집 책장에도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굉장히 쭉쭉 잘 읽히는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고나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대인관계에 대단한 비법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책을 읽기 전부터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은 구체적인 실천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미미하더군요. 이건 지하철 플랫폼에 붙어있는 좋은글을 묶어놓은 수준입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 '다 아는 내용이라고 툴툴 대며 읽었지?' 라고 말하며 '아는 것이 힘은 아니야. 실천해야해' 라고 역설합니다. 제 눈에는 이게 쉴드치는걸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실천이 진짜로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천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의지부족, 게으름과 같은 이유겠죠.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정도면 그런 의지 정도는 충분할겁니다. 재미로 자기계발서를 읽진 않을테죠. 심심하면 소설을 읽겠죠. 그다음으로 실천이 어려운건 어떻게 실천해야할지 잘 모르기때문입니다.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첫인상을 좋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끌리는 사람이 되려면 외모도 중요하고 성격도 중요하고 능력도 중요하다는 너무 뻔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엔 너무 어려운 얘기를 대단한 비법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저자도 이야기 했듯 책의 내용은 대부분이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출간된지 오래되서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뭐하러 잘 알려진 내용을 책으로 엮었을까요? 실천방법이 두둑했다면 정말 명서였을텐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겠죠.(기대치 위반 효과?ㅎ) 좋은책이긴 합니다.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실제 사례와 연구 결과를 결합시켜서 잘 엮어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쭉쭉 잘 읽힙니다. 대인관계 관련 자기계발서의 입문서 느낌이랄까요?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적지만 이러이러한 것들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시키고 있어서 실천방법을 찾는 징검다리 역할에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뷔페같습니다. 먹을만한 많은 음식들이 있지만 딱히 대단히 맛있는 음식은 없는 뭐그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무의식과 감정입니다. 인간이 무의식과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죠. 이 책에서도 그걸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인간이 컴퓨터처럼 똑부러지는 판단을 할 수 없기에 심리학이 재밌고 신기한 것이구요.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무의식적 법칙은 give&take입니다. 인간이 함께 어우러살기위한 장치로 등장했다가 오랜세월 끝에 무의식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법칙이죠.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대개 이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이건 먼저 주는게 남는 장사같습니다. 심리적 부담감도 덜할 뿐더러 먼저 준 사람이 관계를 리드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가장 공감하면서 봤던 것이 give&take 부분이었다면, 어렵게 본 부분은 인상 부분이었습니다. 첫인상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때문입니다. 첫인상이건 열번째인상이건간에 부정적인 정보가 들어오는 순간 끝장이라는 겁니다. 첫인상이 강조되는 것은 첫인상이 부정적이면 그 이후의 만남이 거의 무의미할 정도가 되기때문일겁니다. 결국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요인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할텐데(본의와 상관없이 나쁜인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는 것이 좀 답답했습니다. 또 너무 나쁜인상을 안주기위해 남의 눈치를 보게되면 전혀 즐겁지 않을테니까요. 이부분에 대해선 따로 책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예술표현활동지원 선정작. 많은 언론 노출. 오달수 주연.. 꽤나 기대를 하고 봤는데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건지, 웃음을 주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게 실험적인 작품이냐?? 아뇨. 전 "개그야"(개콘말고)보는 줄 알았습니다. 연극 제목처럼 어정쩡합니다. 강마에 표현을 빌리자면 이건 뭐 참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큰 줄기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합니다. 시공간까지 뒤죽박죽 섞어놨습니다. 등장인물과 장면이라도 좀 적었으면 나았겠지만, 그것마저 너무나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흡입력이 정말 부족합니다. 부족한 흡입력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쓸데없는 개그를 너무 많이 넣었습니다. 단지 개그를 위한 장면과 개그를 위한 등장인물들이 생겨버렸습니다. 전 씁쓸한 웃음 뿐이 나오질 않더군요. 연극이 개콘도 아니고...
어정쩡한 포지셔닝때문에 주요 스토리는 설명이 부족해서 당위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연극은 소위 3류인생들에 대한 이야깁니다. 권투선수, 라운드걸, 흥신소, 노래방도우미, 탈영병, 정신이상자 등등. 하지만 왜 그들이 3류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꿈은 뭔지, 3류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은 치는지, 그걸 못하게 하는 현실은 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냥 3류인생만 보여줄 뿐이에요. 사실 3류인생 소재도 왠만큼 단물 빠진 소재거든요. 적당히 해선 감동 주기 힘든 소잰데, 적당히도 하지 않네요.
그러다가 봉세는 죽어버립니다. 죽은 시간이 월요일 5시래요. 그래서 제목이 월요일 5신가? 어정쩡한 시간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니, 봉세의 인생과 월요일 5시와의 관계가 대체 뭘까요? 도저히 알수가 없습니다. 알수있는건 죽기직전에 봉세가 인생최고로 행복했다는 거? 그나마도 죽기전에 갑자기 조명을 밝게한거랑 '행복해보여서 죽였다'는 정신이상자의 고백덕분에 알게된거지 그런 장치 없었으면 전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너무 어이없게 죽어버렸어요.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수가 없는 결말입니다.
비비지 않고 먹는 비빔밥 같은
(C) 신기루 만화경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봉세인생, 봉세죽음은 무슨 상관일까요? 특히 마지막에 봉세죽음과 대비되는 변호사부부 이야기는 꽤 비중있어보이지만 도대체 왜 들어와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비지 않고 먹는 비빔밥 같은 느낌이랄까요? 배우들의 연기도 작품에 섞이지 못해서 붕붕 떠보였습니다. 캐릭터를 재밌게 잘 잡은 배우들도 보였고, 오달수씨도 내공있는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누구에게도 감탄은 할 수 없었습니다.
연출 탓인지, 작품 탓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히 실망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공감도, 웃음도, 감동도, 울림도, 고민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즐거운 감탄을 하고 왔습니다. 파격적으로 자연스러운 공연스타일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어서 좋았습니다. 요새 인간에 대해 냉소적인 공연과 비극적인 공연을 많이 보는 바람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 공연으로 훈훈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됐네요.
이게 바로 진짜 리얼리즘
(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이래도 되나?' 혹은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세르쥬의 효과"는 현실 같은 연극입니다. 무대는 소박하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TV, DVD 플레이어, 오디오, 책, 탁구대 등등. 진짜 과자, 피자, 와인에 진짜 자동차까지 등장합니다. 조명은 형광등입니다. 그러나 과장된 연기, 관객을 의식한 연기는 없습니다. 배우들의 얼굴보다 등판을 훨씬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승전결로 맺어지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냥 일상의 한조각을 보여줄 뿐입니다. 지난번에 본 "도쿄노트"와 비슷한 느낌도 있는데요. "도쿄노트"가 엿듣는 느낌이었다면 "세르쥬의 효과"는 벽에 구멍 뚫어 놓고 엿보는 느낌이랄까요.
세르쥬는 일요일 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취미입니다. 이름도 거창하죠. "헨델 음악에 맞춘 회전효과" "바그너 음악에 맞춘 빛의 효과" "존 케이지 음악에 맞춘 레이저 효과" "빅 체스넛 음악에 맞춘 폭죽 효과"와 같은 것들입니다. 근데 거창한 이름에 비해 공연은 너무나 허접합니다. RC카에 폭죽을 꽂고 달린다거나 음악에 맞춰서 헤드라이트를 깜빡거리는 정도죠. '이게 뭥미?' 하는 어색한 공기가 객석에도, 무대에도 형성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일상적인 어색함, 그 어색함이 주는 간격이 이 공연의 웃음포인트이자 관전포인트입니다. 별 내용 없는 이야기지만 보는 내내 킥킥거릴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폭소도 터지구요. 어쩜 이렇게 만들 수 있는지. 연출자의 연출력과 세르쥬의 연기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세르쥬의 친구들은 한국에 와서 모집한 일반인들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공연하는 도시에 가서 친구들을 모집한다고 하네요. 연습도 거의 안했고 특별한 대사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극적 연기가 아닌 일상의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세르쥬가 친구들을 어찌나 멋지게 받쳐주던지 전혀 튀지가 않더군요. 세르쥬도 일반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말이죠. 이런 연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대단하더라구요.(저도 세르쥬 친구에 지원해보고 싶었는데 대학원 입시의 압박으로 ㅠㅠ)
소통하고자 하는 세르쥬
(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세르쥬는 어설픕니다. 세르쥬의 공연도 어설픕니다. "세르쥬의 효과" 라는 연극도 왠지 어설픕니다. 그런데 그런 세르쥬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세르쥬가 어느 이야기 속 멋진 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우리의 모습과 더 닮아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 아닐까요?
세르쥬는 매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만 그다지 활발하거나 대인관계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친구들과도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구요. 다만 소통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합니다. 바로 공연이죠. 공연이 썩 멋지지는 않지만요. 어쨌건 친구들은 세르쥬의 공연을 계기로 모이게 됩니다. 모여서 얘기하고 와인을 마시고 피자를 먹습니다. 어색하지만 즐거워보입니다. 왠지 훈훈합니다.
세르쥬는 관객들과도 소통을 시도합니다. '금강제화' '롯데리아' 'GS홈쇼핑' 같은 한국의 상호를 대사 속에 등장시키고, 간단한 대사는 한국말로 합니다. "빨리요" "배웅해줄게" "뭐 좀 마실래?" "코트 받아줄게" 와 같은 말들입니다. 별거 아닌데 재밌고 기분이 좋습니다. 최대한 관객 눈높이에 맞추는거죠. 현지 일반인 친구 모집도 그런 맥락일 겁니다. 실제로 객석 반응도 좋았구요. 긴 대사는 일반인 출연자가 통역하는 방식을 택해서 자막 사용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다가가고 싶지만 어색해 하고 방법을 모르는 게 현대인의 모습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점점 단절되어가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꼭 세련된 방법이 필요한 걸까요? 소통을 위한 노력과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세르쥬처럼 투박하게라도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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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일상생활을 제3자가 관찰하는 느낌이죠 ㅎㅎ 어차피 연극이나 모든 공연예술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하는 게 목적인데, 그럴려면 공감할 수 있게 해야하거든요.
직접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하는 부분은 없지만 공감대형성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소통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햄릿의 정체는 거대한 양파가 아닌가 싶습니다. 400년 동안 깠는데도 아직 새로운 껍질이 남아있으니까요. 햄릿은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재창조되어 왔습니다. 이번달에도 서울에서만 3개의 햄릿이 공연됐거나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중에 이탈리아산 "햄릿-육신의 고요"를 봤습니다. 다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실험극 형태였는데요. 난이도 상입니다. 새롭긴한데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그냥 제맘대로 감상 시작해보겠습니다.
햄릿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햄릿
(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Compagnia Laboratorio di Pontedera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6인조 펜싱검투사들의 존재입니다. 펜싱풀세트(펜싱가면, 펜싱복, 펜싱칼)를 갖춘 이들은 햄릿을 둘러싼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가면을 벗으면 극중인물이 됩니다. 햄릿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6인조 검투사들이 돌아가며 연기합니다. 가면을 쓴 상태에서는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햄릿 내면의 갈등이라던지, 심리적 압박감, 햄릿을 둘러싼 환경 같은 것들 말이죠. 검투사들이 햄릿을 향해 칼을 겨누며 몰아붙인다던지, 서로 대결을 하며 펜싱검의 부딫히는 소리를 낸다던지 하는 식으로 표현이 됐습니다. 또, 무대를 전환하고 소품을 가져오기도 했는데요. 무대크루적인 역할같지만 햄릿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아보이더군요.
6인조 검투사들 덕에 햄릿이 더욱 강조됩니다. 물론 햄릿이 주인공인 작품이긴하지만 더더욱 햄릿 중심으로 풀어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건은 굉장히 스피디하게 전개되는데요. 중간에 암전 없이 막바로 다른 장면이 계속 이어집니다.(햄릿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야기 따라가기도 벅찰 것 같은 스피드였는데 왜 지루한 감이 있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 마치 햄릿 기억 속의 사건을 되짚는 느낌입니다. 어떤 장면에선 한 인물을 2명의 검투사들이 동시에 연기하기도 했는데요. 그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드러낸다기보단 그 인물의 이런 면과 저런 면이 햄릿에게 각각 영향을 준 걸 표현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들 못지 않게 스피디한 전개와 독특한 스타일에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로 무대구조물입니다. 무대 위엔 달랑 이 구조물만 있는데요.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생겼습니다. 바퀴가 달려서 무대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회전도 가능합니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도 있구요. 이 구조물의 위치와 각도, 날개상태에 따라서 장면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매우 독특하면서 경제적인(?) 무대라고 해야할까요.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얘기해주길, 성 모양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 무대가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운명 결정론에 대한 짧은 생각
(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Compagnia Laboratorio di Pontedera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책의 존재입니다. 종종 햄릿이 책을 들고 등장하거나 검투사들로부터 책을 건네받는다던지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뭔가 중요한 역할 같긴한데 아리송하더라구요. 대체 뭐지? 이야기책? 운명책? 뭘까 뭘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연 후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듣고 알 수 있었습니다. 햄릿을 연기했던 배우가 말해주길, 햄릿의 이야기는 결국 햄릿이 풀어나가기 때문에 책을 들고나오는거라고. 마지막에 책을 덮은건 햄릿이 인생이 끝났다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아마 이야기책+운명책 아닐까요. 과거는 쓰여져 있겠고, 현재와 미래는 지금 햄릿이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인 책.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손에 달렸다 뭐 그런얘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다보니 6인조 검투사들이 운명을 나타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검투사들은 햄릿의 주변인물, 주변상황, 내적자아와 같은 것을 표현하는데요. 결국 햄릿의 성격을 형성하고, 햄릿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들이죠. 이런 것들이 바로 운명이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검투사들은 영향을 미칠 뿐 직접 결정하는 건 책을 들고 있는 햄릿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운명=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운명은 없죠. 다만 변화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뻔한 운명은 있을겁니다. 변하는 게 어렵고, 환경에도 종속돼있지만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술가와의 대화에 뿔나다
공연을 다소 아리송하게 봤기때문에 예술가와의 대화가 굉장히 기다려졌습니다.(예술가와의 대화는 공연 후 30분 가량 공연의 연출자, 주요스텝, 배우들에게 관객들이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입니다.) 실제로 책의 의미에 대한 얘기와 무대디자인의 모티브 얘기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근데 어설픈 진행과 이기적인 질문들로 점점 심장박동이 빨라지더군요. 금요일에 본 "세르쥬의 효과" 보다 먼저 포스팅을 하는건 그런 이유가 큽니다.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쓴소리를 좀 날리고 싶어서요.
우선은 사회와 통역에 대한 유감입니다. 이분들은 관객과 예술가 간의 대화를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입니다. 근데 솔직히 좀 방해물 같았습니다. 관객의 질문을 듣고는 사회자가 왜 답변할 예술가를 지정하는걸까요? 모든 예술가들이 듣도록 통역을 한 후에 가장 좋은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답변을 하면 될겁니다. 지정해버리니까 통역은 또 지정된 사람한테만 속닥거리면서 통역을 하더군요. 오죽했으면 예술가 한분이 "모든 사람이 다 듣도록 통역 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되니까 지정된 예술가가 다른사람에게 답변을 넘기려할땐 질문의 전달이 따로 필요했기때문에 시간낭비가 심했습니다. 답변하지 않는 예술가도 관객이 무슨 생각을 하나, 뭘 궁금해하나 알 권리가 있기도 하구요. 자체 검열도 하더군요. 어떤 관객이 질문 두가지를 했는데 한가지만 통역해놓고 왜 나머지 한가지를 전달하지 않냐고 하니깐 시간없어서 그랬다고 면피합니다. 그럴거면 미리 얘기하고 한가지만 고르라고 하던가 해야지, 자기맘대로 질문 골라내는 행태가 괘씸하더군요.
그다음으론 질문하는 관객들이 상황판단을 못하거나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이 자리는 방금 공연을 본 일반관객과 예술가 간의 대화를 위한 자립니다. 물론 그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 중 많은 수가 관련업계 종사자들이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는건 알지만, 일반관객을 생각했어야합니다. 시간도 제한돼있으니까요.
아니 무슨 예술가한테 대고 "이런 실험극 위주로 극단을 운영하시면 스폰서는 어떻게 받나요?" 같은 질문을 합니까? 그분이 질문을 한참 이해못하다가 "하!" 이러더군요. 그리고 꼭 하나씩 나오는 질문인데 "어떤 연기메소드를 쓰나요?" "연기훈련에는 어떤걸 중점둬서 하나요?" 같은 질문 좀 안했으면 좋겠네요. 도대체 이게 일반관객들이 궁금해할만한 내용인가? 라는 의문을 제처두고라도 몇분만에 설명해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전공자는 아니지만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기때문에 좋은 공연을 보고나면 저런게 궁금하긴합니다. 하지만 보통 저런질문엔 뻔한답변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설명하기엔 너무 어렵네요." "모든 것에 중점을 두고 열심히 훈련합니다."
자기과시형 질문도 난감하더군요. "저는 연기교사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공연은 진화된 코러스를 사용하던데요. 이게 이극단의 스타일인지 이공연만의 스타일인지?" 아놔 연기교사인건 왜 얘기하나요. 난 좀 아는 사람이니까 감안해서 답변해달라? 다른 일반관객들은 개무시하는건가요?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예/아니오로 끝날 질문이고, 단지 자기가 이 공연의 검투사들은 진화된 코러스로 규정했다라고 알리고 싶어보이던데요. 예술가의 답변은 이랬어요. "사전지식이 많으신 것 같은데 사실 중요한건 이 공연 자체가 어떻게 표현됐느냐하는겁니다. 공연자체에 집중해서 질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사분께선 나중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한 조언까지 요구하셨습니다. 진짜 욕나오더군요. 이게 예술가들을 예고에 초빙해서 강연하는게 아니거든요. 공연보고 공연에 대해 궁금한점을 일반관객들이 물어보는 자린데, 거기다대고 그딴걸 요구하면 어쩌자는건지. 더 가관은 그렇게 한번 거절된 뒤에 제자라는 고딩이 다시 그 질문을 하더군요. 전부 어이없어서 웃습니다. 더구나 그 고딩은 사회자가 시간없다고 이제 마지막 한사람의 질문만 받겠다고 했을 때 손들었던 많은 사람들 중 선택됐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예술가들이 굉장히 지루하거나 짜증난듯한 표정도 보였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요.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구요. 이분들이 한국 관객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돌아가겠습니까?
그럼 관련업계 종사자들이나 학생들은 질문하지 말라는 얘길까요? 아뇨. 맨처음에 무대디자인 질문한 분은 무대디자인 공부하는 학생처럼 보였습니다. 답변 내용을 노트에 받아적던데요. 그 분처럼 공연자체에 관한 것을 물어보면 일반관객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사회자는 통제하지 말아야할 부분은 통제하고 저런 허접하고 이기적인 질문들은 통제를 안하더군요. 제발, 상황을 제대로 판단했으면 좋겠네요. 메소드질문이나 연기자지망생을 위한 질문이 질문 자체로는 틀린게 아니겠죠. 근데 그런건 연기워크샵이라던가 예고특강이라던가 하는 상황에나 어울리는 질문이라는거죠.
이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쓰였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Compagnia Laboratorio di Pontedera, Alain Volut에 있음을 알립니다.
아 정말 예전에 영문과 수업할 때, 다른 모든 텍스트들도 그렇지만, 특히 햄릿을 비롯한 셱스피어는 물같아서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앵글이 완전 달라 진다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정말 가끔씩은 미스테리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들어요. 몇 백년전의 텍스트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해석된다니!!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그리고 저도 가끔씩 관객과의 대화 등을 '겪곤'하는데...뭐랄까...좀 가슴이 두근두근해요ㅠㅠ 라디오 프로에서 시청자 연결할때 채널을 돌리고 싶은 느낌이랄까 ㅋㅋ
"모스크바, 사이코"는 고대 그리스의 메데아 신화를 모스크바로 가져온 작품입니다. 이 작품과 같이 색다른 시도를 하기에 신화는 참 적합한 소재인 것 같습니다.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를 바닥에 깔고 가기 때문에 이야기에 집중할 에너지를 다른 쪽에 조금 나눠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물론 진부하지만, 대부분의 요즘 이야기들도 기본적인 틀은 신화를 따를 정도로 인간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양념만 제대로 하면 전혀 지루하지도 않구요.(당장 드라마 "청춘의 덫"만 해도 메데아 신화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충격적인 신선함!
(C)서울국제공연예술제, School of Modern Drama. all rights reserved
지금까지 봤던 SPAF2009의 작품 중에 최고입니다. 런닝타임이 3시간 가까이 되는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이유는 표현방식이 매우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카메라맨의 존재입니다. 무대 위에 두 명의 카메라맨이 들어와있습니다. 공연을 촬영 합니다. 촬영된 영상은 실시간으로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 보여지죠. 배우의 얼굴 또는 신체 부위가 클로즈업 됩니다.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대 사각지대가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객석을 바라보고 있는 배우의 뒷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 미러볼이나 그림책 같은 소품을 클로즈업해서 장면의 효과를 증폭시킵니다.
단순히 찍어서 보여주는 수준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장면에 맞게 카메라웤을 합니다. 실시간 촬영된 영상만이 활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가 중간중간 공연과 오버랩되며 나옵니다. 무대 위의 세공간(메데아방, 크라우제방, DJ공간), 그리고 스크린. 어디에 중점을 두고 볼지는 관객의 마음입니다. 눈이 호강을 합니다. 뿌듯해요. 어설픈 비유를 하자면, 경비실에 앉아서 CCTV 모니터로 건물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그만큼 작품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영화의 장점을 연극무대로 가져와버린겁니다. 맙소사.
무대를 굉장히 좁게 쓰는 것 같은데도(아니 무대 자체가 별로 크지 않은건가?) 영상 덕인지 굉장히 흡입력이 있더군요. 외국 작품이라서 자막을 봐야하는데, 자막 스크린 바로 옆에 영상 스크린이 있어 작품의 비주얼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막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뭐, 의도치 않은 효과겠지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엄지손가락을 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배우들은 때론 객석을 향해서, 때론 카메라를 향해서 연기를 합니다.(배우들과 카메라맨들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했을까요?) 연극적인 연기, 그러니까 다소 과장된 연기(미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더더욱 과장된)를 하면서도 영화적인 연기, 그러니까 디테일한 연기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특히 메데아 역의 배우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광기어린 연기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빨리 되감기 효과, 슬로우모션 효과를 비롯한 퍼포먼스적인 동작들도 감칠맛 나는 양념이었습니다. 해설자 비슷한 역할을 하는 DJ 또한 볼거리였구요. (이 DJ는 공연 시작 전에 로비에서 디제잉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사이코로 만드는 사랑과 성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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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아시다시피 메데아는 이아손과 사랑에 빠져서 조국을 배신한 여인입니다. 배신하는 과정에서 남동생까지 죽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이아손과 행복하게 잘 사는가 했더니 이아손이 성취욕(돈, 권력)에 눈이 멀어 메데아를 버리게 되자, 복수심에 불타 남편과 아이들까지 모두 죽이는 무서운 여인이죠. 끔찍한 희대의 악녀라는 평을 받지만, 이 이야기가 계속 재생산되는 이유는 메데아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때문일겁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표출되서 그렇지 메데아의 심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비극은 사랑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 사랑때문에요.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성취욕 또한 만만치 않은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왜 인간은 현재의 행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돈과 권력은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건데.. 소중한 사람을 버리면서 까지 높아지고 싶고 많이갖고 싶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도 이런 사랑과 성취욕 앞에선 약한 인간이기때문에 메데아 이야기를 볼 때마다 슬퍼지는 것 같아요..
편하게 공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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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밑바탕이 잘 알려진 신화거든요. 메데아의 행동 동기는 사랑이기때문에 공감하면서 보기에도 어려운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표현하는 방식도 재밌고 곳곳에 개그코드도 숨어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지요.
근데 굉장히 어렵고 난해하게 보는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SPAF2009에 대해 프리뷰한 어느 신문기사에서도 상급코스에 뒀더라구요.(이거 보고 괜히 쫄아서 봤어요.) 이걸 어렵게 볼라고 하니까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뭐 평론가들이나 예술가들은 무슨형식을 썼고 연기메소드는 어떤 것이고 표현방식은 무슨 스타일이고 하면서 보겠죠. 배우들이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구요. 물론 이런 것들이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공연팀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면서 표현방법을 정하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창조했겠죠. 당연히 그래야만 하구요.
하지만 일반 관객들까지 그렇게 볼 필요가 없죠. 그냥 내가 느끼는대로 알아지는대로 받아들이면서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후에 다른 사람들과 감상을 나눈다거나 다른 자료를 접하면서 더 많은 것을 알아갈 수도 있겠지만, 볼때부터 예술적으로 깊숙한걸 이해해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거죠. 그러다보면 다 재미없습니다.
저도 별로 예술가적인 눈은 없어서 깊게 보진 못하지만 그냥 즐겁게 보려고 합니다. 식견이 대단한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따라갈라다가 가랑이 찢어질 걸 알기때문에 굳이 노력하진 않습니다. 보다보면 그런 식견이 생길 수도 있을 거란 기대만 조금 갖으면서 편하게 보는거지요~
이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쓰였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School of Modern Drama에 있음을 밝힙니다.
basecom님 와우, 너무나 멋진 블로그를 가지고 계시군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더불어 모스크바사이코에 대한 좋은 포스트 참 재밌네요, view on 누르고 갑니다~
자주 제 홈피에도 놀러오세요. ^^ 전 이미 즐겨찾기 했습니다. ㅋㅋ 앙.. 여기 블로그 너무 멋져서 갑자기 설치형 블로그로 바꾸고 싶은데요? ㅋㅋ
2010/01/05 09:30
2010/01/05 19:18
2010/01/06 16:38
봄에 오빠가 돌아왔다가 무대에 오른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0/01/06 22:17
그러고보니 요샌 실용서적 외에 책을 잘 보지 않네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0/02/28 22:47
2010/03/08 04:13
대전에도 연극 공연 자주 하는군요.
연극 대중화의 문제점 중 하나가 지방에서 공연을 접하기 힘들다는 점인데.. 좀 사정이 나아진건가요?^^